* 출국전..

모집 공고가 나고, 신청서를 제출하고, 학기 중에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서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갔는데,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외교관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나에게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그냥 도장을 찍더니 가라고 했다. 허무했다. 필요한 서류만 제출해서 내고, 대충 어디에 뭐가 있구나 하는 것만 알고 나갔다.

시카고에 사촌 언니 가족이 살고 있어서 나는 프로그램 일정보다 일주일 먼저 출국했다. 마침 그 때가 미국의 겨울방학 기간이어서 조카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새삼 느끼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10년 넘게 시카고에 산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도 많이 하고,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조카들이랑 놀면서 미국 문화를 바로 옆에서 체험할 수도 있었다.

1월 1일 새해를 시카고에서 맞았는데, 다들 자정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TV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한국이랑 너무 똑같아서 재밌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맞는 새해는 또 느낌이 달랐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ELP 오리엔테이션 하루 전날 필라델피아로 갔다.

* University of Pennsylvania

University of Pennsylvania는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8개 대학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 학교는 경영 대학원인 Wharton School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안철수 교수님이 이곳에서 MBA 과정을 밟으셨다. UPenn 캠퍼스는 34th street에서부터 40th street에 걸쳐 있고, 캠퍼스 자체가 하나의 작은 마을이나 다름없다. 식당, 옷가게, 편의점, 우체국, 커피숍, 서점 등 필요한 것은 다 근처에서 구할 수 있었다. 학생증을 발급받은 덕분에 모든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UNIST에서 늘 하던 것처럼 도서관 그룹스터디룸에서 팀원들과 발표 준비를 하기도 했다. 또, 식당인 Houston Hall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있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다.

* 생활..

숙소는 2인 1실이었고, 방에는 TV, 침대, 책상, 냉장고, 전자렌지, 화장실, 옷방 등이 있었다. 내 룸메이트는 운 좋게도 동갑내기 한국인 여자애였다. 40th street 까지는 Upenn Police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순찰을 돈다. 50th street 이후가 특히 위험한 지역이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69th street에 있는 한인마트에 갈 때 흘끗 봤었는데 정말 얼핏 보기만 해도 무섭고 음침했다. 36th street에 위치한 기숙사는 굉장히 깔끔하고 좋았다.한 가지 불편했던 점이 있다면 바로 식사였다. 숙소인 The Axis에서는 안내받은 것과 다르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UPenn 캠퍼스 내의 meal plan을 신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고 동갑내기 한국인 룸메이트랑 같이 한인마트에 가서 햇반을 사 먹기도 하고, 동네 식당 구경도 하고 그랬다.

중국, 베트남, 타이, 멕시코, 브라질, (미국인 입맛에 맞춘)한국음식 등등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구경했다. 동갑내기 룸메 덕분에 심심하지 않은 두달이었다.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여행도 가고, 쇼핑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러던 와중에, 소녀시대가 뉴욕에서 미국의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룸메이트랑 나는 TV를 켜고 소녀시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미국에서 TV를 보는 것도 신기했고, 그 TV 안에 소녀시대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미국 사람들은 사실 아직 소녀시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 사랑을 부르는 필라델피아….

날씨가 예상했던 것만큼 춥지 않았다. 두꺼운 겨울옷을 잔뜩 준비해 갔는데, 대부분의 날씨가 영상 10도씨를 넘었고, 눈도 거의 오지 않아 거의 입을 일이 없었다. 덕분에 가서 봄옷만 잔뜩 샀다. 오히려 울산이 더 추웠다고. 원래 이것은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시카고는 미국에서 눈이 제일 많이 오는 주 중에 하나인데, 이번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고 사촌 언니가 말했다.

필라델피아도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눈이 종아리까지 쌓이고 영하로 한참 내려 가는 날씨라고 했다. 필라델피아 하면 떠오르는 것, 필라델피아 치즈가 있는데, 정작 이 곳에서는 치즈 그 자체보다 필라델피아 스테이크가 굉장히 유명했다. 근처 food truck에서 $5 정도에 먹을 수 있다. 정말 맛있었다.

필라델피아 구경은 하루면 충분한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Love Park, Old City Hall 등이 있다. UPenn 캠퍼스에서 걸어서 혹은 버스를 타고 10분정도 가면 금방 시내에 갈 수 있는데, 시내에 가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옷가게, 화장품가게 등에 갈 수 있다. 시내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Chinatown도 있고, 볼거리가 많다. 필라델피아에는 유명한 박물관이 여러 군데 있다.

BIP과정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수업이 있기 때문에 주로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에는 여행을 다녔다. 미국 동부에는 ‘메가버스’라는 교통수단이 있는데, 온라인으로 일찍 예약을 하면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미국 동부에서 토론토까지 갈 수 있다. 보스턴까지 7시간, 뉴욕 2시간, 워싱턴 D.C.가 3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할 때 메가버스를 굉장히 애용했다.

참, 필라델피아를 조금만 벗어나면 King of Prussia Mall 이라는 쇼핑몰이 있는데, 미국에서 2번째로 크다고 한다. 125번이나 124번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서 갈 수 있다.

* 프로그램..

Business Intensive Program은 Business에 관련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매일매일 쓰기, 말하기, 듣기 그리고 읽기 수업을 했다. 일반 ELP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룸메이트에 비해 BIP 과정이 훨씬 수업시간도 많고, 숙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이 많았다. 주로 한국 사람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classmate들의 1/2가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서 2명뿐이었다. 그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카자흐스탄, 중국, 홍콩, 베네수엘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이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나라 혹은 회사에서 지원을 해 줘서 온 경우가 많았다. 내가 제일 어린 학생이었고, 일부는 미국 대학으로 편입을 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러 오기도 했고, 거의 대부분이 30대 직장인이었다. Professional Writing, Speaking in the Working World, Target Listening, Breakthrough Reading이 각 과목의 이름 이었고, writing 시간에는 complaint e-mail, research report, resume, cover letter 등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

말하기 시간에는 설득이나 협상 같은 딱딱한 것에서부터 좀 더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듣기 시간에는 주로 business, management, technology에 관한 영상을 보고 그것에 관해 배웠고, 읽기 시간에는 ‘100 Great Businesses’라는 책을 읽고, 영어로 된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 등을 배웠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친절하고 잘 가르쳐 주셨다. 또, 매 시간마다 꼭 group discussion활동을 했는데, 쓰기 시간이라고 해서 글을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해야 했다. 다른 시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읽기 시간에는 group presentation도 두 번이나 있었다.

UPenn에는 ‘Conversation Partner’라는 제도가 있는데, Upenn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언어와, 가르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면 서로에게 맞는 파트너를 연결해 준다. 그 덕분에 한국어 공부를 하는 UPenn 학생을 만나서 같이 놀러 다녔다. 내 파트너의 이름은 Myra이고, 고향은 Texas 주의 Houston이며, 전공은 법학이다. 그런데 나보다도 더 한국 드라마를 많이 알고 있었다. 이번 여름에 대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러 한국 전라도 전주에 온다는데, 그때 또 만나서 이번에는 내가 한국 구경을 시켜 줄 생각이다.

또, UPenn 에서는 ELP 학생들을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했는데, 그 덕분에 공짜로 NBA 게임도 보러가고, 타국에서 맞는 구정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프로그램 중에 Ivy League 대학들 간의 농구 리그도 있었는데, Harvard와 UPenn의 경기를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농구 경기는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야구만큼 재미있었다. 또, 한국보다는 심심하지만 미국만의 독특한 대학 문화, 응원 문화가 재미있었다. 이 외에도 Museum tour, Karaoke party 등이 있었다.

*느낀점..

처음에는 두 달이라는 기간과 엄청난 학비와 생활비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배웠다.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세상은 너무나 작았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훨씬 다양하고 신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철저한 자본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돈이 있고 없음이 어떻게 다른지도 뼈저리게 느꼈고, 어깨너머로 듣고 본 게 다였던 미국 그 안에 내가 진짜 있었다는 것도 아직 믿기지 않는다. .

특히 경영학부 학생으로서 세계 최고의 MBA인 Wharton school 그 근처에(물리적 거리뿐이지만) 내가 있었던 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굉장히 감사하고, 나 또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도 배웠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정말 다른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도 정말 굉장한 사람이 많았고,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베네수엘라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UPenn 학생들을 보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 여기서 만난 국적 불문, 나이 성별 불문의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했던 기억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날, Farewell party에서 그 동안 수업시간 만으로 부족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친해진 일본인 아줌마들이랑 다시 한국에서 이 멤버 그대로 만나기로 약속도 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고,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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