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America!
겨울방학의 4주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 시에 있는 UCLA에서 여는 해외연수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해외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원서 작성과 학생비자발급 등 혼자서 모두 준비하기엔 무척 벅찼지만, 학교 국제교류팀의 담당 선생님과 중간에서 연결해 주었던 트래비스 사의 도움으로 준비를 잘 마칠 수 있었다. 항상 간접적으로만 접하던 미국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미국에 도착해서 얼마동안은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마치 꾸며놓은 영어마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뭘 어떡해야할지 참 막막하기도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선배 두 명과 친구 한 명이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넷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즐거운 미국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넷이 어울려 다니면서 재밌는 일들도 무척 많았다.
In UCLA
UCLA Extension프로그램은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듣기, 문법 그리고 말하기 시험을 쳐서 반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였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5시간씩 수업을 했다. 점심시간을 경계로 오전수업과 오후수업으로 나누어졌는데, 오전수업은 Academic과 자신이 선택한 수업을 하루씩 번갈아 가며 수업을 했고 오후수업은 자신이 택한 수업 하나를 매일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오전수업의 하나로는 Culture 수업을 선택했고 오후수업으로는 Discover LA수업을 선택했다. Academic수업에서는 문법과 숙어표현, 단어, 발음 등을 배웠고 Culture수업에서는 미국 시트콤에 대해 얘기하고 같은 반 친구들끼리 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Discover LA시간에는 LA의 유명 장소를 직접 가보고 그 장소와 관련해서 Discover LA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올리고 인터뷰도 해서 올리는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다.
UCLA에서 공부를 했으니, 당연히 UCLA 캠퍼스를 구경해 봐야하지 않겠는가! UCLA의 캠퍼스는 너무나 멋졌다. 물론 시설이나 생활하기에는 우리학교의 신식 건물들이 더 편하겠지만 UCLA캠퍼스의 건물들은 UCLA의 전통과 고풍스러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나 아름답고 멋졌다. 신식건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식이 되겠지만 이런 고풍스런 건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조건 최신의 것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잃지 않는 또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Worthful Experience
생활을 하다 보니, 옷도 좀 필요하고 동생한테 뭘 좀 사다주고 싶었는데, 마침 같이 간 다른 세 명과 의견이 맞아 교외에 있는 아울렛으로 쇼핑을 갔다. 얼마나 멀던지 급행버스를 1시간 타고 기차역에 가서 기차 타고 또 1시간 기차에서 내려 1600미터를 또 걸었다. 머나먼 대장정이었다. 부산에서 경주 가는 거리보다 더 간 것 같다. 쇼핑을 끝내고 아울렛을 나선 시각은 7시 41분쯤. 선배 한 명의 착오로 우리 모두는 기차가 9시에 도착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선배 한 명이 확인해 본 결과, 기차 시각은 8시 5분이었고 도착이 9시였다. 기차역까지 걸어가는 길만 1600미터가 남은 상황이었고, 넓은 도로가 있었으나 버스도 택시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주변상황에 우리는 모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No parking any time!이란 표지판 때문에 원래도 가능성이 낮지만 히치하이킹 성공률은 제로였다. 근처에 숙박시설 같은 곳도 없으니 노숙자가 될 기세였다.
한 7시 55분쯤까지 걸었을까…… 주유소가 보였는데, 주유소 뒤쪽에 5인승으로 보이는 흰색 차 발견! 내가 약간 뻔뻔하긴 하지만 그런 뻔뻔함과 대담함이 어찌 나왔는지 곧장 주유소로 달려가서 직원으로 보이는 분한테 저 차가 당신의 차냐고 물었다. 직원은 나를 사장에게로 데려다주었고, 사장에게 저 차가 당신 차냐고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얼마 없다며 우리는 돈을 지불할 수 있으니 기차역까지만 태워다줄 수 없냐고 물었다. 사장은 직원이 태워줄 것이고 직원에게 돈을 주라고 했다. 차에 탑승한 시각은 7시 59분! 굉장히 불안했지만, 다행히 내리자 바로 기차 타는 곳이었다. 기차는 예정보다 1분 늦게 도착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곧 왔다. 1분이라도 어긋났으면 진짜 노숙자신세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기차 타야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나한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절대로 노숙자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는 집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이든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솟아날 구멍은 있으며, 용기와 대담성을 가진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우리가 사는 Westwood의 Hammer Museum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Getty Center는 굉장히 멋진 곳들이었다. Hammer Museum에는 여러 가지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전시장에는 램브란트와 고흐, 에드가 등 거장들의 오리지널 작품이 걸려있었다. 유리도 씌워지지 않은 작품들이었고 가까이 다가가도 별다른 제제가 없었기에 혹여 오리지널이 아닌가 싶어 직원 분께 이 작품들이 모두 오리지널이 맞느냐고 물어보니 굉장히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간접적으로만 접하던 거장들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또한 우리나라라면 유리 때문에 보지 못했을 세세한 붓 터치들까지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Getty Center는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매우 멋있었다. Getty Center에는 그림과 조각상등의 많은 미술품들과 함께 멋진 정원이 있었다. 고서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림과 함께 글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글들을 적었다고 하기엔 그림이 너무나 세밀하고 글들도 너무나 정교했다. 마치 프린트한 것 같았다. 아니, 현대의 발달된 기술로 제작을 한다고 해도 그런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여 물어보니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고 재질은 종이가 아닌 동물의 가죽으로 된 것이었다. 대형 카펫들도 몇 개 걸려 있었는데, 진정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너무나 멋졌다. 회화작품들도 굉장했다. 그 수도 굉장히 많았지만, 램브란트, 고흐, 모네, 밀레, 세잔, 르누와르, 에드가 등 많은 거장들의 작품을 유리로 보호하지도 않고 가까이 가도 많은 제제를 가하지 않아서 작품들이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얻어갈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르누와르의 작품과 에드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아서 너무 기뻤다. 그 느낌을 담아가고 싶어 사진을 찍었지만, 역시 실제로 볼 때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고, 색감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원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Getty Center는 무척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LA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멀리 높은 산위에 쌓인 눈까지도 볼 수 있었다. 밤이 되니 Getty Center 곳곳에 조명이 켜져 너무나 멋있었다.
Accident & UCLA Medical Center (another worfthful experience)
미국에서 참 다사다난했지만, 겪은 일들 중 가장 큰 일은 베니스비치에서 겪은 자전거 사고였다. 선배 둘, 친구와 함께 간 베니스비치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베니스비치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었고,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있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자전거 말고도 스케이트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킥보드 등 갖은 운동기구들의 집합소였다. 특히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있었는데, 묘기도 부리는 모습이 너무나 멋졌다. 길거리엔 많은 자판들이 열려있었고 공연하는 사람들은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춤이나 묘기를 보여주고 팁을 받기도 했다. 피자로 배를 채우고 나서 우리 넷도 자전거를 빌렸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서 처음엔 두려웠지만, 적응이 되자 곧잘 타고 다녔다. 그런데 굽어진 길에서 속도를 내다가 마주 오던 꼬마여자애랑 추돌사고가 났다. 나와 부딪힌 여자애가 그리 크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턱이 얼얼한 게 턱을 다친 것 같았다. 급히 손을 넣어 이빨을 확인 했는데 다행히 이빨은 별 이상이 없는 듯 했다. 다만 안쪽이 살짝 찢어졌는지 피가 좀 묻어나왔다. 여자아이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나에게 계속 괜찮으냐며 물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나에게 계속 휴지를 주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경찰 두 명이 다가와 괜찮으냐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냐며 물었다. 내 잘못이었는데, 여자애는 아프다고 울다가 나에게 미안하다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안아주었다. 만일 한국이었으면 그 여자애의 부모님한테서 온갖 소리를 다 들었겠지만, 그 여자애의 부모님은 별다른 말이 없었고 우리가 포옹을 하자 따뜻하게 지켜봐주셨다. 그 여자애의 가족이 떠난 후에도 경찰 둘은 떠날 때까지 나에게 괜찮으냐며 확실하냐며 물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을지도 모를 만큼 항상 경찰들이 치안을 유지해주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단순 자전거 사고에도 관심을 가지고 안전에 대해서 거듭 확인을 한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다음날 입을 벌리면 너무 아파서 결국엔 병원을 가야했다. 외국은 예약제가 잘 되어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침 일찍 우리가 수업을 받는 건물에 들려 예약을 부탁해서 예약을 하고 병원으로 갔다. 통역사가 필요하냐기에 한국어로 부탁했지만, 진료와 검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통역사는 구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몸무게와 혈압 그리고 체온을 재고 나서 의사선생님을 뵈었다. 자전거 사고일 뿐인데,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검사를 했다. 혈압과 체온도 다시 재고 동공검사부터 시력검사, 귀 내부 검사, 다리 반사작용 검사, 피부감각 검사, 다리랑 팔이랑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는 지 등등 갖은 검사를 다 한 것 같았다. 의사선생님이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면서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했다. 휠체어를 갖고 나타나신 한 아주머니……나는 그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까지 수송되었다. 병원에서 나는 완전히 중환자였다.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해서 혈압과 체온을 다시 쟀다. 혈압을 잴 때 사용했던 팔에 부착하는 띠 같은 건 일회용인지 그냥 가지라고 해서 기념품으로 들고 왔다.
그 후로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리다 이름이 불려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고경위를 얘기하고 혈압과 체온을 다시 잰 다음 의사선생님께 받았던 진단을 똑같이 다시 한 번 받았다. 한 간호사는 자신이 나의 담당 간호사라면서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었다.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요금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직원으로 보이는 분께 내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을 알고 싶다고 하니 찾아봐주셨다. 보험 덕분인지 나에게 비용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해주셨다. 그렇게 또 기다리다 검사를 하러갔는데, 또 휠체어였다. 나는 괜찮다고 걸을 수 있다고 해서 안내해주는 사람과 그냥 걸어갔다. 도착하니 MRI 기계인지 무슨 기계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흰색의 둥근 천장에 누워서 들어가는 그 기계로 검사를 했다. 검사를 마치니 나를 데려다주었던 사람이 기다리는 곳까지 데려다줬다. 한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검사결과가 나왔단다. 검사결과로는 이상이 없고 일주일동안 부드러운 것만 먹고 최대한 씹지 말라고 했다. 또 만약 일주일 후에도 계속 아프면 그땐 담당 의사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UCLA Medical Center에 담당 의사와 담당 간호사가 있는 여자가 되었다.
UCLA Medical Center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마이클잭슨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병원이기도 하다. 내가 병원을 나온 시각은 오후 3시 40분쯤. 아침부터 가서 오후 4시 다되어 나오다니……거의 반나절을 병원에서 보낸 듯 했다. 정말이지 왜 이 병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턱 쪽이 아프다고 했으면 턱만 검사했을 텐데, 여기는 혹여 다른 부위도 아픈지 검사를 다하고 정말 조심히 다뤄주었고 특히,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친절했다. 그리고 청결인지 어찌 보면 낭비인진 모르겠지만, 일회용 사용이 엄청났다. 어떤 한 여자 분은 목에 기브스를 하셨는데, 침대로 이송되셨다. 그 여자 분이 침대에서 내리자 그 침대의 시트와 베개 커버 등은 그대로 다 버려졌다. 그리고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무언가를 만질 때는 손을 소독하고 장갑을 끼고 만졌고, 만진 후에 그 장갑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또한 곳곳에 손소독제 있어서 지나가면서 지나는 사람들은 수시로 손 소독을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병원에서 써야할 표현들에 대해 실제로 배울 수 있었다. dizzy란 단어는 병원에서 함부로 쓰면 안 되는 단어였다. 그냥 어지럼증이라 생각했는데, dizzy는 심하게 어지러운 경우에 쓰이는 단어였다. confuse는 진짜 정신적인 착란을 의미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병원들이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이 병원이 우리나라 병원들에 비해 가진 뛰어난 점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마치며
이 밖에도 무수한 일화가 있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미국 생활은 나에게 항상 흥미롭고 재밌는 도전이었다. 그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미국의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미국의 문화에서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았다.
한 예로, 가끔씩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 한국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등 바로 외면해버리지만 미국에서는 한 번 싱긋 웃어준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웃어주고 또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주는 작은 배려. 그 작은 배려가 나에게는 너무나 크게 느껴졌고 그 작은 배려에서 그 모르는 사람이, 더 나아가 미국이란 나라가 나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다. 거기에서 하나 더 느낀 것은 모르는 사람이 한번 싱긋 웃어주고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준 것이 나에게 미국을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 것처럼 한 개개인이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게 있어 UCLA Extension 수업에서 수업내용보다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간접적인 매체를 통해서가 아닌 그 나라의 국민으로부터 직접 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솔직히 고작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동안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 온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음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서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을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보고 경험해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떠난 미국행이었다. 실제로 UCLA Extension 수업보다는 실제생활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또한 느끼고 왔다. 영어수업이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좋은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각 나라의 사람들과 실생활에서 겪을 수 있었던 미국의 문화와 영어는 고작 한 달이었지만 충분히 나에게 도움이 되었고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다 이수하고 수료증을 받는 날, 오전수업 중 Academic 수업을 담당하셨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초기에는 수업에 있어서도 별다른 열성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에 찬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내가 이번 미국행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큰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 넓은 미국이란 곳에서도 살아갈 수가 있구나하는 것을 느낀 것이고 그로 인해 내 자신에 대해서 예전보다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